답은 내면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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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멘토나 스승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르다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는 것은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방법입니다.     중요한 건 내면의 소리 "깨우쳐주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너희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 내면의 소리이다.. 내면의 소리는 너희에게 가장 가까우니 내가 말하는 가장 큰 소리이다. 그것은 자기 이외의 모든 것들이 너희가 규정하는 식대로 참인지, 거짓인지, 옳은지 그른지, 혹은 좋은지 나쁜지 말해주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너희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스스로 알아서 방향을 정하고, 배의 진로를 잡고, 여정을 이끌어주는 레이더이다." 초지능 통찰인 신나이, 즉 <신과 나눈 이야기>는 이렇게 내면의 소리를 가장 으뜸가는 멘토로 꼽는다. 임사체험 경험자인 아니타 무르자니도 외부에서 답을 구했을 때 겪게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과거에 내가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답을 찾으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책을 찾았고, 선생과 구루를 찾았다. 그들이 영원한 미제의 해결책을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의 힘을 자꾸만 바깥의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의 시행착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멘토나 스승을 찾아 다니면 다닐수록 자신의 마음은 갈수록 더 노예상태로 전락할 뿐입니다.      내면의 소리 듣는 법 그렇다면 내면의 소리는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그것은 대화처럼 귀에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느낌 혹은 생각의 형태로 그 메시지가 뚜렷하게 인지됩니다.  그러나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먼저 명상의 기법을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명상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수행은 일상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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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기계에 손을 넣으면 사정없이 잘라 버리면서 계속 돌아간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어린애, 노인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해버린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면 비정해 보이지만 자연 또한 그렇게 작동한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불인', 즉 하늘은 어질지 않다고 표현했다. 불가에선 좀 더 순화시켜 인과율이라고 말했다.     결과를 만드는 건 행동 인과율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결과를 만드는 작업은 무엇보다 행동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 이 세가지를 통해 창조가 이뤄지지만 마지막 단계인 액션이 그 중에 가장 강력하다.  생각이 혼선을 빚기 전에 액션, 말이 꼬이기 전에 액션, 이것이 바람직한 창조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하면 생각은 점점 더 하나로 가닥이 잡히고 말도 갈수록 더 일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하다." 일상에서 자주 거론되는 저런 명제도 액션을 통해서만 증득이 된다.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단돈 만원이라도 직접 건네는 게 액션이다.  그 이전의 생각 단계에선 줄까, 말까 그런 번뇌가 자주 일어난다. 말의 단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렇지만 저렇게 액션이 이뤄지면 말과 생각은 더 이상 헛발질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주는 행위를 통해 그것이 주는 넉넉함을 몸과 마음이 먼저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멘탈 연금술은 액션 테크닉 멘탈의 연금술도 궁극적으론 액션 테크닉이다. 그래서 마음공부에서도 마지막 과정은 예외없이 액션이다. 중노동, 순례, 마라톤, 산행.. 액션이 아닌 게 없다. 그리고 이런 액션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게 바로 우리네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액션, 액션, 또 액션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멘탈을 다지기에 가장 좋은 곳 역시 일상이다. 나머지 방법들은 모두 일상 적응훈련일 뿐이다. 김기태: "우리가 매일 매일 ...

새로운 그 무엇, 색다른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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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치의 기준은 Something New, Something Different, 즉 새로운 그 무엇, 색다른 그 무엇이다. 그래서 뉴스는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세상의 변화를 유도한다.     21세기 멘탈 영역의 뉴스 21세기 멘탈 영역의 뉴스는 무엇일까?  '경계의 붕괴'가 단연 톱이다. 그것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안겨준 충격 그 이상이다. 수천년간 견고하게 장막을 쳤던 경계들이 맥없이 속속 무너지고 있다. 극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했던 영성의 비밀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그것이 책과 강연, 미디어를 통해 일반에게 신속하게 전파되고 있다.  겐포 머젤: "난생 처음으로 공안이란 것을 받았을 때, 나는 그전에 늘 통하곤 했던 모든 방식을 시도해봤다. 그 공안과 실제로 하나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과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내 모든 것을 내던지며 처절하게 애썼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30년 이상 선수행에 매진했던 데니스 겐포 머젤 선사가 <빅 마인드>에서 고백했던 쓰라린 경험담이다. 국내의 김기태 선생이 겪었던 좌절과 너무나 흡사하다. 저렇게 고군분투하면서 장시간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 간혹 운좋게 '견성'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열의 기쁨도 잠시, 카메라의 셔트는 한번 찰칵한 뒤 다시 닫혀 버린다. 그러면 수행자는 다시 그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아주 운이 좋아 '대각'까지 잡으면 이번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보림'이라는 고행길에 접어든다. 세속적인 집착보다 더 고약한 깨달음에 대한 집착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듣기만 해도 너무 아득해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접근법이다. 겐포 머젤: "실재는 붙잡을 수 없다. 그것은 붙잡히는 것과 붙잡는 것 그 너머에 있다. 그래서 붙잡으려는 행위가 부질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인 것을 향한 일반적인 방식의 추구와 갈망과 탐구가 제대로 먹히질 않는...

아주 특별한 나(I)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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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세계는 방송 시스템과 놀랄만큼 닮았다. 방송은 뉴스, 드라마, 스포츠, 예능 등 온갖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어 연주소에서 전파를 통해 공중에 쏜다. 채널을 선택하면 그 채널에 맞는 화면이 즉각 나타나고 파워를 끄버리면 아무 것도 없는 블랙 상태를 유지하는 게 방송 시스템이다.     세상은 창조주인 나의 표현  '나'라는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내면에서 온갖 콘텐츠를 만들어 몸을 통해 그것을 외부로 쏘면 현실이란 화면이 거울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다. '세상은 창조주인 나의 표현'인 셈이다. 또 현실의 탈을 쓴 그 화면은 내가 쏘는 전파에 따라 수시로 내용이 달라진다. '나' 방송국에선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전파를 쏘는 것도, 채널을 선택하거나 끄는 것도 오직 나만이 한다는 점이 기존의 방송과 조금 다를 뿐이이다. 박경리: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소설가 박경리님이 말년에 밝힌 소회이다. 인생 숙제를 마무리한 사람의 느긋한 여유가 물씬 느껴진다. 내면에서 저런 콘텐츠를 외부에 전파로 발사하면 내 눈앞에는 평온한 현실이 펼쳐지는 게 당연하다. 어떤 남자: "꺼져버려!"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 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아니라 내가 분을 못참고 펄펄 뛰는 동영상이 현실의 화면에 나온다. 기계처럼 그렇게 작동이 된다.      모든 이가 거울 역할을 한다 데이비드 호킨스: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들은 사실 내가 마음 속으로 알아주지 못한 것을 내게 되비춰 준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을 바라보도록 나를 몰아붙인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놓아버림>에서 설명한 그대로이다. 내가 만나는 상대는 내가 내면에서 쏜 콘텐츠를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가 아니라 상대방...

버림의 대상은 가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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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영역에선 가장 먼저 버려야하는 게 에고이다. 모든 가짐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모든 번뇌와 괴로움, 고통의 뿌리가 바로 에고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이미 많이 나와있다. 그 중에서도 단기간에 가장 확실하게 버리는 방법은 '상상으로 죽고 버리기'이다.     상상으로 죽고 버리기 찬기운이 스며드는 10월 하순 어느 날, 나는 가야산의 어떤 선방을 찾았다. 선방의 기운은 과연 달랐다. 날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였던 내가 입소 첫날부터 곤하게 잠들 수 있었다. 버림의 에너지가 강한 곳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하루 밤의 단잠으로 기운을 차리고 수련과정에 들어갔다. '죽고 버리기'는 한마디로 화끈했다. 그 방법이 처절해 내심 죽고 싶었던 내겐 아주 딱이었다. 나는 상상으로 원없이 죽고 또 죽었다. 젊은 날 몇년 동안 검도를 수련했기에 나는 할복을 죽음의 방법으로 선택했다. 상상으로 하는 거니까 실제론 안죽는다는 일종의 안도감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반가부좌로 앉은 자세에서 두 손으로 단도를 움켜잡고 배꼽 아래 세치 왼쪽 복부를 힘껏 찔렀다. 비록 칼은 없었지만 실제로 할복을 하는 것처럼 온힘을 다해 단도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죽 그어나갔다. 다시 오른쪽 복부에서 명치쪽으로 칼날을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명치에서 단도를 뽑아 왼쪽 목에 칼날을 겨눈 뒤 두 손으로 사정없이 베어버렸다.    "우웩-" 상상으로 감행한 자결인데도 구토가 왈칵 올라왔다. 토사물이 상의를 적셨다. 하지만 죽는 넘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쓰러진 내 시신 위에 휘발유를 콸콸 부었다. 그리고 불을 켠 라이터를 그 위에 던져버렸다. 불길은 맹렬한 기세로 내 시신을 태워나갔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화장이 끝난 뒤엔 다시  그 잔해 위에 폭약을 대량으로 장착해 폭파해버렸다. 내 몸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이 지상엔 내 몸의 세포 하나 남지 않았다. 그...